♧ 김용화 시 모음/•꽃시 모음

•꽃시 모음

김용화 (poetkyh) 2017. 3. 21. 10:21

 

초롱꽃

 


달빛에 잔별이 깔리는 풀밭

 

처녀로 죽어서 길 한가운데 묻혔다는

눈썹 푸르던

누이

 

분화장하고

눈썹 달고

 

고즈넉이 서 있다

 

 

목련

 

 

화들짝-

꽃망울 터트려 놓고

알종아리 파들거리며 하늘 아래 까치발 선 

막무가내

4월의

불량소녀들!

 

 

별꽃

 

 

하늘나라 아기별들이 밤사이 놀러 나왔다 금기를 깨고

새벽닭 울기 전에 돌아가지 못해 빛을 잃고 꽃이 되는

벌을 받았으리라

낮 동안 강한 햇볕 아래 작은 꽃잎 앙다물고 있다가

밤 되자 저 도저한 향기를 한껏 뿜어내고 서 있는, 너는

 

 

미스김라일락

 

 

미군정기

삼각산 바위틈에 자생하던

토종 수수꽃다리가

태평양 건너가 서양 물 먹고

파란 눈의 미스 김이 되어 돌아왔다

 

진보랏빛 꽃망울이 연보라를 띠다

활짝 피어나 백옥같이 흰옷으로 갈아입고

짙디짙은 향기 멀리 내뿜는

라일락 중 라일락,

 

키 작고 당돌한 우리 귀여운 아가씨

미스김이 돌아와

까치발구두, 개미허리드레스

폼나게 걸치고

쨍쨍한 5월 하늘 아래 서 있다

방울방울

눈물 매달은 채

 

 

장미는 왜 붉게 피는지



이번 여름엔사랑을 하고 싶다

 

야한 티 하나 사 입고
낯선 여자와

낯선 거리에서
낯설지 않은 사랑을 하고 싶다

 

장미는 왜
붉게 피는지

 

낯선 거리에서 묻고 싶다

 

우담바라꽃

 

 

지구의 가장 응달진 속살

풀잠자리 앉았다 날아간 무화과나무 잎 자리

헐벗음과 굶주림의

3천 년

고행을 딛고

오롯이 피어나는 하늘 꽃, 한 송이

 

 

민들레꽃


갈라진 장독대 틈새나
자갈밭, 돌 틈, 보도블록 사이라도 좋아
개똥밭에 피어나도
나는 좋아
긴긴 겨울 견뎌내고
쪼르르-
아침 볕에 젖은 머리 말리며 꽃등 하나씩 켜 들고 섰는
웃음 헤픈 어미가
아무 땅에 아무렇게나 퍼뜨려 놓은
노랑꽃, 하양꽃, 흰노랑꽃…
한철 지나고 나면 바람 타고 뿔뿔이 흩어질
애꿎어라, 옹기종기
눈빛도 하 착한
아비 모르는 자식들

 

 

자목련

 

 

하늘나라로 간 소녀들, 하늘나라는

심심하고 답답해

밤사이 어른들 몰래 놀러 나왔다 깜박,

담장 위에 벗어 놓고 간

어여쁜, 꽃신

 

 

강아지꽃


너무 일찍 간 아랫말 순이
입가에
볼우물처럼

 

우물가 풀섶에
함초롬
피었다

 

이내

시들어버리고 마는 

 

분꽃


담장 밑에 세숫물 받아먹고
저녁쌀 씻을 때면
피는

단봇짐 끼고 어린 동생
앞세워
영 넘어 부잣집 늙은 영감 시앗으로 들어간

열여섯
분이 같은

 

산길에서

 

 

나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깊은 산 외딴 길섶에

한 송이 이름 없는 작은 꽃으로 피어나리라

혹여, 그대가 한 번쯤

하찮은 실수로

바람처럼 내 곁을 머뭇거리다

지나칠 때

고갤 꺾고 꽃잎 한 장 바람결에 날려 보리라

 

 

불두화 피는 밤

-입하立夏

 

워낭 소리 무심히
빈 뜰을
채우는 밤

몽실몽실
달 아래
불두화 벙그는 소리

외양간 소가
귀 열고
가만-


눈 감으시다

 

 

애기똥풀 꽃

 

 

애기 울음소리가 끊긴 지 오랜

외딴 마을

녹슨 철길 가

 

애기똥이 애기똥풀 꽃을 피워

애기 냄새 맡게 하고

애기 울음소리도 듣게 해 준다

 

하늘나라 애기들이

옹기종기

애기똥 꽃을 피워 꽃 잔치를 벌인다

 

 

고욤꽃 아래서

 

 

노파와 개가 마주 앉았다

 

복실아

……

 

심심하지?

……

 

그래,

산다는 게 그런 거란다

……

 

……

……

 

고욤 꽃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감꽃 지는 마을

 

 

감꽃 피는 내 고향 가고 싶다

논두렁에 콩 심고

비 맞으며 깨 모종하고

 

장날이면 엄마랑 단둘이

등불 밝혀 들고

한내 장길 아버지 마중을 가고 싶다

개구리 울음소리

가만가만 밟아가며

 

오늘같이 비 오다가 갠 날엔

앞산 뒷산

나란히 잠든 어른들

한 분 한 분 깨워 일으키고 싶다

 
 

능소화

 

 

가까이 오지 마셔요

이윽한 눈빛으로

떠보려 하지도 마셔요

 

애오라지 단 한 분,

지아비 손끝에서만

피어나는 꽃이랍니다

 

제 몸에 대는 순간

그예 당신은

눈이 멀고 말 것이어요

 

 

능소화 사랑

 

 

단연코 잊지 않으리라

달빛 따서 덮어주던

그날 밤 그대 다순 손길

 

잠든 순간이라도 한 번만

살짝 다녀가오시라

귀로나 보일까나

눈으로나 들릴까나

 

천 개의 눈 깜작거리며

만 개의 귀 쫑긋대며

작두날 타듯 아스라이

맨발로 하늘 끝 기어오르다

 

사모침이 다하여

뎅강뎅강-

목을 버혀 떨구었고녀

담장 밑에 뒹구는 사랑아

 

 

할미꽃

 

 

돌아가시기 전날 밤 밤새 큰손자 이름 부르셨단다

 

할머니-

 

 

낮달

 

 

고욤꽃 밥풀처럼 뿌리던 날

울면서 내 팔에 매달리던

달팽이 같은

여자,

풀섶에 떨어뜨리고 간 빛바랜

손거울

 

 

달개비꽃*

 

 

뒷마당 한구석 닭의장 근처

풀섶에 숨어

 

빠꼼히 얼굴 내미는

너를 만나면

 

그리움은 온통 연파랑 하늘빛이 된다

 

몽당연필 침 발라

눈썹 그리다

 

먼 마을 시집간

달개비꽃

 

*달개비는 닭의장풀과의 한해살이풀로 닭의장

근처에 핀다 하여 붙여진 이름. 충청도 예산,

홍성 지역에서는 달기집께라고도 부름

 

 

코스모스 


덜컹거리며

미군 차가 지나가던

학교 길

 

가는 목을 빼고

깨금발로

손 흔들던

단발머리

 

먼먼 그리움 끝에

가슴으로

그려낸

 

빨강, 하양, 분홍,

 

 

토끼풀 꽃 

 

 

가오리연 꼬리 날리던 묘 펀덕

토끼 똥 쌓였던 자리

찾아가며

소보록 피어나던 꽃
아련한 꿈길 어디쯤 안갯속 헤매이다

불현듯 마주친

소꿉친구

꽃목걸이 걸어주면

봉싯봉싯 볼 붉히며

하얀 덧니

드러내 보이던

동그란 토끼 눈, 아랫말 고 계집애

 

 

소래산 진달래꽃

 

 

언제 보아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 산

 

밀물 드는

포구에서

짜디짠 소금바람 불어오면

소래산 진달래는 석양에 붉게 핀다

 

앙상한 가지마다

고만고만한 작은 슬픔들 거느리고

해마다

붉게 피는

 

소래산 진달래꽃

 
 

해바라기 사랑


해를 맞듯
당신 만납니다

해를 보내듯
당신 보냅니다

오늘도 난
해바라기

지는 해
바라보다
꽃잎 하나 떨굽니다

당신
뜰 앞에

 

 

실레네 스테노필라⁎

 

 

얼마나 간절한 기다림이었을까

빙하 말 시베리아 콜리마 강변

매머드 들소 뼈가 묻혀 있는 동토 속에

기억이 짧은 북극 다람쥐가

숨겨놓고 찾지 못한 열매 한 톨,

해와 달과 바람의 손길 기다리며

3만 1천8백 년 동안의 고독한 잠 속을

뒤척이다 러시아 과학자

손끝에서

하얀 울음 터뜨리며 꽃을 피워냈다

실레네 스테노필라!

얼마나 가슴 떨리는 설레임이었을까

밀레니엄이 수레바퀴처럼

돌아가는 동안

산이 강 되고 강이 바다가 되고

얼마나 숱한 생명들이 지구별을 찾아와

사랑하고 사랑하다 돌아들 갔을까

눈썹 끝에 가물대는 자그만 별 하나 반짝,

빛난다

머언 태곳적 별에서 폭발한 불빛이

수백 광년을 달음질쳐와

지금 막, 내 망막 속으로 들어왔으리라……

 

⁎러시아 연구진이 시베리아 콜리마강 인근

툰드라 지대 지하 38m에서 3만 년 동안

얼어붙어 있던 석죽(패랭이꽃) 과의 열매를

발견, 조직을 배양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된 식물명.